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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비성의 발굴과 도성 계획의 이해

가구비 2024. 5. 22.

백제 사비시대(538~660년)의 도성인 사비성은 1990년대 이후 본격적인 발굴 조사를 통해 그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발굴 결과, 당시 백제인들의 선진적인 도시 계획과 건축 기술이 확인되었습니다.

사비성은 부여 기념물 유적지 일원에 소재한 백제의 수도로, 성곽과 궁궐, 관청 등의 주요 시설이 자리했습니다. 발굴된 사비성 유적에는 대규모 궁궐터와 성곽, 관청 건물지 등의 주요 유구가 남아있습니다.

먼저 사비성의 도성 계획을 살펴보면 당시 선진적인 도시 설계 이념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곽은 산지와 하천을 활용하여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고, 좌우대칭의 정연한 격자형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궁성과 관청, 주거지 등이 기능별로 구분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당시 도시 기능의 체계적 분화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중앙에 궁궐이 있고, 그 주변으로 관청가와 주거지구가 조성된 전형적인 고대 도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비성 궁궐터 유구에서는 대규모 건물지와 광장, 수구렁과 옹성 등 당시 왕궁의 규모와 방어 시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궁성 외곽에 축조된 돌출 옹성은 방어력을 높인 독특한 구조입니다.

발굴된 관청 건물지에서는 당시 주요 관청 기능을 알 수 있습니다. 회의 시설, 연회장, 무기고 등의 용도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확인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고도로 분화된 관청 기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비성에서는 선진적인 도로 체계와 배수 시설이 발견되어 주목됩니다. 도성 곳곳에 체계적인 도로와 지하 배수구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당시 상당한 수준의 도시 기반 시설이 갖춰져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사비성 발굴을 통해 백제인들의 도시 설계와 건축, 토목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체계적인 도시 구획, 기능 분화, 도시 기반 시설 등에서 고도의 계획성과 기술력이 발휘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동북아 최고 수준의 도시 문화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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